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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본 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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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7-0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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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환여승람] 유일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1,200)  
① 정흠(鄭欽) : 자는 숙흠(淑欽), 아호는 지촌(芝村)으로 경주(慶洲) 사람이다. 양경공(良景公) 희계(熙啓)의 증손이다. 성종(成宗, 1469~1490) 시대에 사마시(司馬一무인의 과거)에 등과하였고, 여러번 승진하여 지사(知事)⦁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천거를 통하여 집의(執儀)⦁장령(掌令)으로 제수되었으며, 효성(孝), 우의(友)가 순수하고 돈독하였다. 또한 받듬에 있어서도 공(公)은 삼가고, 또 조심하였으며, 문집도 남겼다.

② 이타: 아호는 모산(茅山), 경주(慶州) 사람으로 이구(李龜)의 아우다. 재주(才)와 덕행(行)을 겸비하였으며, 실천함에 있어서도 믿음이 있었다. 어질고 착하여 생원(生員)으로 천거된 사람이다. 중종(中宗, 1506~1544) 14년(1519,己卯年)의 사화(士禍) 때 화를 당하여 낙향한 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고향 사람들이 강(江) 옆에 사당을 세웠다.

③ 이유순(李幼淳) : 아호가 행촌(杏忖), 이름난 환관(宦官)으로서 이경중(李敬中)의 아들이다. 독실한 행동은 물론 의리가 있었다. 정한강(鄭寒岡) ⦁유서애(柳西崖一柳)의 제자로 벼슬길에 나갔으나 그가 맞은 시대가 혼탁하여 여 여러차례 징계를 당하였다. 후에 중앙정부에서 금부도사(禁府都使)로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④ 이숙(李淑) : 자는 선초(善初), 아호가 화암처사(花巖處士)로 전주(全州)사람이다.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후손이다. 인조(仁祖, 1623~1649)시대에 생원(生員) ⦁진사(進士)가 되었다. 학곡 홍서봉이(鶴谷 洪瑞鳳)이 처음으로 추천하였고,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이 또다시 천거하였으나 모두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우암 송시열(尤菴 宋時熱)이 쓴 묘의 비문(碑)이 있으며, 글씨는 단암 민진원(丹巖 閔鎭遠) 이 썼다.

⑤강정환(姜鼎換) 대중효자(大重涍子)로 강재무(姜宰珷)의 아들이다. 수암 권상하의 제자로 선생을 반곡처사(盤谷處士)로 칭하였고, 하늘이 낳은 진정한 효자(孝子)라고 세인들이 칭하였다. 성종(成宗, 1469~1494)시대에 호조(戶曹) 복무명을 받았으며, 고종(高宗, 1863~1907)시대에 효학(孝學)으로 천거되었다. 감찰(監察)로 추정되었으며, 유고(遺稿)가 있다.

⑥ 남도진(南道振):자는 중옥(仲玉), 아호는 농환재(弄丸齋)로 의령(宜寧)사람이다. 동강 언경(東岡 彦輕)의 후손이다. 숙종(肅宗, 1674~1720) 시대에 유학경전과 학문 그리고 도(道)에 밝아 감역(監役)으로 천거되어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주역을 저술하였고, 예기(禮記)를 읽은 소감, 행동에 대한 실천소감을 기록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도암 이재(陶菴 李縡)가 쓴 묘비문(墓碑文)이 있다.

⑦ 이창현(李昌顯) : 자는 회부(悔夫), 아호는 평천재(平泉齎)로 전주(全州) 사람이다. 영해군 이당(寧海君 李瑭)의 후손이며, 묵전당 이시만(黙全堂 李時萬)의 현손(玄孫)이다.
정조(正祖, 1776~1800)시대에 진사(進士)가 되어 세마(洗馬-지도와 서적 관리부서)로 제수 받았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학문과 행실이 일찍 모범이 되었고, 그의 도(道)는 오묘하기까지 하였다. 사서(四書), 육경(六經) 연의에 대한 저술이 있다. 돈녕부(敦寧府) 도정(都正)으로 추증되었으며 유고(遺稿)가 있다.

⑧ 윤학신(尹學臣) : 자는 이중(伊仲), 아호는 주산(舟山)으로 다원(茶原) 사람이다. 문과에 급제하였고, 윤조원(尹調元)의 후손이다. 성리학(性理學)에 밝아 명성이 있었고 글과 행동은 돈독하였으나, 주산(舟山)의 남쪽에 은거하면서 조그마한 집에서 부모님 섬기기를 지성으로 다하였다.
후에 곤주(昆州) 군수로 여러번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문집을 남겼다.

⑨ 송정옥(宋正玉) : 자는 서구(瑞球), 아호는 소호(蘇湖)로 여산(礪山) 사람이다. 충헌공 (忠憲公) 송인명 (宋寅明)의 후손이다.
 효행과 학문을 함에 있어 다른 사람보다 탁월함이 있었다. 헌종(憲宗, 1834~1849)시대에 지평 (持平)으로 추증되고 성균관 제주(祭主)로도 추증되었다.

⑩ 윤응선(尹膺善) : 자는 군서(君瑞), 아호는 회당(晦堂)으로 파평(坡平) 사람이다. 의당 박세화(毅堂 朴世和)의 제자다.
 덕행(德行)과 문장(文章)은 세상에서 여러번 추앙된바 있고, 스승 박세화의 학문을 정통으로 물려받은 수제자이다. 용하영당(用夏影堂)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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