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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22-07-0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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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환여승람] 정렬
 글쓴이 : 문화원
(조회 : 2,481)  
① 윤씨(尹氏) : 이시진(李時振)의 부인으로 임진란 당시 적들에게 그의 남편이 잡혀가 갇히는 처지가 되자 떨치고 일어나 남편이 갇혀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아버지가 적에게 잡혀가자 적의 칼날을 무서워 하지않고 적진(敵陣)으로 달려가 크게 꾸짖어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화를 면하게 하였다 이에 정려(旌閭)를 세워 준 것이다.

② 이씨(李氏) : 장씨(張氏) 가문으로 시집을 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죽자 그녀도 목을 졸라 자살을 하였다. 이에 열녀 정려를 세웠다.

③ 전씨(全氏) : 정려(旌閭)편에 보면 있다. 열녀(烈女)가 되어 정려를 세워 준 것이다.

④ 안씨(安氏) : 본적은 순흥(順興)으로 초계 정효영(草溪 鄭孝永)의 부인으로 예의에 대하여 모범이 되고, 청렴하고 정숙하였다.
  시집을 간 후 24살 때 남편이 죽는 상(喪)을 당했는데도 이것을 하늘이 자신이 잘못한데 대해 재앙을 내린 것으로 생각하여 모든 절조와 기개를 지키며 효성으로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고, 가솔(家率)들을 열심히 양육하여 후손이 이어지게 하는 등 가문(家率)들을 열심히 양육하여 후손이 이어지게 하는 등 가문(家門)을 일으켜 세웠다.
  고향 마을에서는 그녀를 흠모하고 칭송하였다.

⑤ 박씨(朴氏) : 본적은 의흥(義興)으로 박용엽(朴用燁)의 딸이다. 삼척(三陟) 김동홍(金東弘)의 부인으로 천품이 맑고 깨끗하다.
  시집을 가 지극정성으로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효성으로 섬기였고, 시아버지가 중병이 들자 손가락을 잘라 피(血)를 먹여 살려냈다. 시어머니 또한 병이 들어 3년동안 백약(百藥)이 무효인지라 역시 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살려냈다. 이번에는 남편이 병이 들어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며, 보양하였으나, 끝내 남편이 죽자 자신도 따라 죽고자 하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죽음에서 살려내는 데 힘쓰는 등 실천 예의로 가솔들을 이끌었다. 또 조카 김태현(金台鉉)을 양육하여 가문의 손(孫)을 잇게 하였으니 마을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칭송과 감탄의 소리이고, 포상과 표창이 있었다.

⑥ 원씨(元氏) : 본적은 원주(原州)로 원석규(元錫圭)의 딸이다. 재영(載寧) 이우현(李禹鉉)의 부인이다. 천성이 정갈하고, 조용하며, 시집을 가서 효(孝)로써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모시고, 공경함으로 남편과 자식을 대하였다.
  19살이 되었을 때 남편이 상을 당하자 밤낮으로 통곡을 하며 슬퍼 하였다. 슬프고 애달픈 마음으로 상례와 장례를 치룬 후 1달 후 남편을 따라 가고자 스스로 자결하였다.
  유학자(선비)들의 초상과 표창이 있었다.

⑦ 윤씨(尹氏) : 본적은 파평(坡平)으로 진위(振威) 김기호(金基鎬)의 부인이다. 시집을 가 효로써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모시고 공경함으로 남편과 자식을 돌보았다. 불행하게도 남편이 죽음을 맞이하자 그녀도 따라 죽고자 하였으나, 늙은 시어머니가 아직 집에 계셔서 남편을 따라 가지 못하였다.
  이틀 후 시어머니 역시 돌아 가시게 되어 통곡하며,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였고 예(禮)를 더욱 더하여 장례를 치루고 모시었다. 삼우제(三虞祭)를 지낸 후 슬픔을 억제하지 못한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향 사람들과 유학자(선비)들이 그녀의 효(孝)와 열녀(烈女)성을 포상하고, 널리 알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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