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 볼 수 있는 게시판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천의 지명과 행정구역의 변화 지역적 특성과 산물 등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일 : 16-07-12 13:29
[수산면] 새로운 휴양지로 성장하는 - 능강리(綾江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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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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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에서 597번 지방도를 타고 청풍방면으로 40분 정도 승용차로 달리면 '높은다리' 바로 앞에서 좌측으로 20번 시·군도로가 이어진다. 이 길은 청풍면 도화리(桃花里)로 향하는 길인데 도화리를 지나 굴곡이 심한 길을 10분 정도 가다보면 이곳 능강리(綾江里)에 도착하게 된다. 청풍면소재지에서는 남한강 건너 동북쪽에 마을이 위치한다. 마을 뒤편으로는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금수산(錦繡山, 1015.8m)이 긴 산자락을 펼치고 있고, 아래로는 남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마을은 청풍군 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강 옆이 되어 '능강'(綾江) 또는 '능강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능강리라 하여 금수면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금성면의 지역이 되었는데 1929년 10월 14일 수산면에 편입되었다. 84년 충주댐 담수로 인해 수몰이 된 이 마을은 84년 당시 도화리 마을 앞에 임시로 마을터를 잡아 이주했으나 법정리(legal village)로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공백상태로 남아있었다. 그 후 89년부터 현재의 능강리에 마을을 조성해 90년부터 이주하여 법정리로 개편되어 다시 행정업무가 시작되었다. 수몰 전 마을은 지금의 마을터에서 남한강변으로 300m 밑에 있었고, 행정업무가 중지되었던 마을을 종전처럼 법정리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마을민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만 했다.
수몰 전에 본동(현재 능강리 자리)과 과거 능강초등학교 자리 근처에 있었던 술모기로 이루어졌던 능강리는 본동에 50여호 술모기에 25호가 살고 있었다. 수몰 당시(1984년) 인구는 307명으로 마을의 전체 농경지는 논이 15.4㏊, 밭이 92.9㏊었다. 98년 현재 마을은 총 26가구 62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경작지는 논이 16㏊, 밭이 4㏊를 차지하고 있어 경작지 중에서 밭의 유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수몰 당시 새로운 이주촌에 가옥을 신축하기 위해 농·어촌 주택 용자금을 대출 받았지만, 이 마을은 후에 융자금 상환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정부 융자금 보조를 받지 않고 집을 지었다. 당시 정부 융자금을 지원 받아 가옥을 신축했던 사람들은 농가 부채가 늘어나면서 융자금의 상환이 어려워 집을 다시 팔고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정부 융자금으로 가옥을 신축했던 4가구는 모두 타지로 이주하였으며 타지에서 마을로 입주한 외지인들은 민박을 주업으로 생활하고 있다.
수몰 전에는 주로 밭농사를 위주로 하여 고추·콩·조 등을 경작하고 송이채취를 부업으로 하였다. 수몰 이후에 현저하게 나타나는 농경지의 변화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전체적으로 경작지가 줄어들었는데, 현재 새로운 이주촌이 형성된 마을터는 예전에 모두 밭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마을민은 논농사 보다는 고추재배에 전념하고 있다. 70년대에는 황기재배가 호황을 누렸으나 전국적으로 황기 재배면적이 증가하고 한약재 가격하락에 영향을 받아 지금은 황기재배를 중지하였다. 마을에서 고추재배는 인근 마을보다 일찍 시작했으며 70년대에 수입이 좋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