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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1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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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면] 솔무정이 있는 마을 - 광의리(廣儀里)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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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면의 중앙에 위치하며 지형이 평평하고 넓어서 광의리(廣儀里)라고 부르는 이곳은 제천에서 청풍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654번지방도 도곡 방면으로 길을 틀어 연곡리를 지나쳐 약 10분 거리에 위치한다. 수몰전 광의리는 연곡리와 계산리 사이에 있었지만, 84년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계산리가 양평리에 통합되어 비봉리(飛鳳里)로 불렸던 마을이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광의리는 제천군 비봉면에 편입되어 광의리라 하였다가 1918 년 청풍면에 편입되었다.   
 

마을로 들어서기 전 연곡리와 이어진 골짜기를 산지당골이라 부르며, 마을은 두 개의 골짜기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데 마을의 왼쪽편을 작은 골(배나무골), 오른편을 큰 골 이라 부른다. 마을이 언제 형성되었으며 또 누가 개촌하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수능 안(安)씨·성(成)씨·강(姜)씨 등이 개촌한 것으로 여겨진다.
수몰 전 광의리는 2개의 자연마을-솔무정과 강화동(강아동)을 합쳐 약 70여 가구가 넘게 거주하였지만 72·82년 수해 이후, 그리고 수몰 후 현재는 17가구 37명으로 급속한 인구감소를 보이고 있다. 솔무정마을은 강변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고, 강화동은 그 위에 자리하였다. 현재의 마을터로 옮겨오기 전까지 한번 더 이주하였는데 72년 수해 때 마을을 버리고 두 마을 모두가 현재 위치에서 약 200∼300m 밑에 위치하였다가 정부에서 융자를 받아 집을 건축하였으며 충주댐의 담수가 시작된 이후 다시 지금의 자리로 마을터를 옮겼다. 솔무정에는 커다란 정자가 있었고, 바로 강 옆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마을이나 여행객들의 왕래가 잦았다.
72년 수해 당시, 부녀자들과 아이들을 먼저 산 중턱으로 올려보내고 장정들은 마을에 남아서 집을 지켰다. 하지만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마을은 물난리로 폐허가 되어버려 산 중턱으로 마을터를 옮겨왔다. 수몰 전 마을에서는 주로 콩·조·보리 등을 경작하였고, 수몰 후에는 고추·수수·콩·담배를 경작하고 있다. 마을에서 매년 행하던 서낭제는 솔무정에 있는 서낭당(동네서낭)과 강화마을 중간쯤에 위치한 큰 서낭당 두 곳에서 지냈는데 정월 보름 저녁, 큰 서낭당에 제사를 지낸 후 솔무정에 있는 서낭당에서 제의를 수행했다. 솔무정은 커다란 소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정월 보름 이전에 마을제를 수행하지 못하면, 마을회의를 통해 다시 날을 받아서 제의를 수행한다.

마을에서 제관은 식구가 적은 사람을 선출하였는데, 그 이유는 제관이 되기 위해서는 생기복덕에 맞고 깨끗한 사람을 선출하였기 때문에 가족이 많은 사람보다 적은 사람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제물은 큰 서낭당과 동네 서낭당이 같으며 각기 새 음식을 장만하였으며 떡과 술만 올렸는데 떡은 백설기, 술은 청풍 도가집에서 받아 온 막걸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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